시즌1_110일차(타직 7일차/20160901, 목요일) 랑가르에서 WIFI/3G없이 이틀밤을 보내다.

시즌1_110일차(타직 7일차/20160901, 목요일) 랑가르에서 WIFI/3G없이 이틀밤을 보내다.

# 인터넷이 안되서 좋은 점

인터넷이 되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다.
저녁식사 후에 프랑스 매튜+로렌스 커플과 한시간 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와이파이나 3G가 터졌다면 아마도 우리 셋은 식탁에서도 종종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지 않을까 싶다.

# 천장 위에 돌아다니는 쥐들
내가 묵었던 호실 천장을 쥐들이 가끔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초등학교 3학년 이전까지 살던 시골 고향집 생각이 났다. 그 시절에는 천장위를 누비는 쥐들이 꽤 있었던 시절이었다.
방 하나에 다섯가족이 함께 자던 그 시절엔 천장에 쥐가 꽤나 돌아다녀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나무 막대기로 수시로 천장을 두둘겨줬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고향 신작로에는 울창한 미류나무도 많았다. 그러고보니 타지키스탄은 시골에서 자란 중장년층 한국인 여행자에게 꽤나 매력적인 곳이다. 옛시절의 모습을 지금 파미르의 작은 마을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내가 봐왔던 이 지구상 어떤 곳에서보다 더욱 정감있게 말이다.

# 랑가르 마을의 금살구
게스트하우스에서 10분 정도 산보로 걸어내려오면 랑가르 마을이다. 
마을을 거니는데 담넘어 살구나무에 오렌지 빛깔의 살구가 주렁주렁이다. 살구나무 사진을 찍고 있자니 지나가던 현지 주민이 나를 보고 빙그시 웃으며 그집 안으로 들어가서 살구 열두개를 따다주었다.
집주인은 아니고 이웃집 사람인가본데 여행객을 위해 호의를 베풀어 주신 거다. 

과육이 탄력이 있고 옹골지다. 4,000m 고원지대의 강렬한 햇살, 설산을 휘감아 내려오는 청정한 바람을 머금은 살구였다. 입안이 기뻐한다. 그맛은 천상계에 자랄 것 같은 새콤함이 약간 곁들인 달콤함에 약간의 쓴맛까지 농축시킨 맛이다. 과일이라기보다는 약 같은 살구였다.  과육 자체가 튼실하고 옹골차서 잘 뭉그러지지도 않아 배낭안에 이틀 정도 가지고 다니가 꺼내도 신선했다. 
157일 실크로드 여행에서 내가 맛 본 과일 중에서 세 손가락에 꽂을 것 중에 하나였다. 이런 청정 과일을 못보는 것이 타지키스탄이나 파키스탄 같은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굉장한 호사라고 할 수 있겠다. 타지키스탄과 파키스탄의 과일 맛은 자연의 맛에 가장 가까운 것, 신의 소박한 선물이었다.

▲ 랑가르 마을의 금살구

# 랑가르에서 실크로드 다큐멘터리를 몰아서 보다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는 랑가르 마을

천장에 쥐가 돌아다니는 도미토리룸에서 새벽 2~3시까지 노트북에 담아온 실크로드 관련 다큐멘터리를 몰아 보면서 이틀밤을 보냈다.

여하튼 쉼없이 달려오는 여행길에 담아온 다큐멘터리 파일들을 제대로 열어볼 기회가 없었다. 12명은 잘 수 있는 도미토리룸이지만 오늘은 나 혼자 뿐이다. 매튜/로렌스 커플이 셋이 그냥 함께자자고 불러서 들어가서 침대칸 하나 잡고 짐을 풀고 잠시 누웠는데 커플이 있는 방에 쏠로가 끼어 있는 그 분위기가 애매했다. 도저히 못있겠다 싶어서 그냥 12인실로 옮겨서 혼자 통째로 쓰기로 했다. 어차피 이날 이 게스트하우스의 손님은 매튜/로렌스/나 오직 세명 뿐이었다.

# 아하 바로 여기있었구나
노트북에 담아온 다큐멘터리들은 대부분 분류해놓은 폴더에 들어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노트북 바탕화면 구석에 있는 이름모를 폴더를 열었더니 문제의 바로 그 동영상들이 거기 있었다. 바탕화면 한 구석에 있는 폴더로 자동 다운로드되어져 있던 것을 나는 잊고 있었던거다. 
이 다큐멘터리 영상들이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국경 이미그레이션에서 나를 30분간 잡혀있게 만든 실크로드 관련 동영상이었다. 이미그레이션 직원이 그걸 어디서 열었는지 당시에 나도 궁금했었는데 말이다.

우즈베키스탄을 빠져나오면서 우즈벡 immigration에서 짐체크 경비가 내 노트북을 보자고 하더니 문제의 그 동영상을 열었던 것이다.
그때는 저 동영상을 내가 언제 담았는지 그리고 저게 어느 폴더에 있길레 찾아낸 것인지 신기해했었다. 우즈벡 관리는 탐색기를 열어서 바로 발견된 실크로드 다큐멘터리를 30분 정도 돌려보면서 계속 묻는 것이다.

"여긴 어디냐? 중국 카슈카르..??"
관리 曰    "어 아프카니스탄 동영상은 우즈벡에서는 안되는데...? 이거 아프카니스탄이잖아?" 
나 曰  "에이 무슨 소리에요? 이거 타지키스탄쪽에서 와칸밸리 너머 아프카니스탄 지역을 찍은 영상이네. 아프카니스탄 현지가 아니라니까"

관리 曰  "와 이거 사마르칸트네"
등등 감탄도 하고.. 탄식도 하고... 등

여하튼 뭔가 꼬투리 잡을 만한 것은 없나 살피기도 하고 마침 immigration도 한적하니 나랑 함께 시간 죽이기를 하자는 것이다.
30분 정도 지나자 이 여행자가 뭐 용돈이라도 쥐어줄 것 같지도 않고 가진 것도 없어보였는지 그제서야 짐싸고 건너가라고 했다.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는 지겹게 지독하게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 내가 정한 이번 여행 테마 중의 하나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인터넷망이 들어오는 곳이면 어떻게 해서든 아이폰이나 노트북에 연결을 하려고 노력했다. 가능하면 최대한도로 현지의 인터넷 환경을 이용하는 것이 이번 장기여행의 테마 중 하나였다.

요즈음엔 핸드폰없이 또는 인터넷 연결없이 유유자적 여행하는 것을 큰 자랑인양 떠벌이는 여행가들이 많다. 반대로 뽐내고 싶은 이들이다. 

여행 스타일은 저마다 다르다. 자기 좋을대로 하는 거다. 나처럼 한 번 맘먹고 오지에서도 지독하게 인터넷에 접속하고자 하는 놈은 또 그렇게 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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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nyjeff

Hasta La Victoria Siemp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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